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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존재했던 것

이 글은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의 후속 글입니다.

만약 완전 무(無)의 상태가 존재했었다면, 그 완전 무의 상태는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수많은 것이 존재하고 있습니다(예를 들면 당신 자신). 이는 곧 완전 무의 상태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완전 무의 상태가 존재했다면,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이 글을 읽고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완전 무의 상태는 지금까지도 그대로 유지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완전 무의 상태는 결코 존재했던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는 항상 뭔가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뭐가 존재했다는 것일까요? 우리가 처음에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면 처음부터 존재했던 무언가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그저 하나의 의미 없는 물질이었을까요 아니면 뭔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인격체 였을까요? 오늘날 존재하는 우리가 판단할 때 그 첫 존재는 무엇과 같은 존재였을까요?

우선은 먼저 양적인 문제를 생각해봅시다. 다시 한 번 처음에 떠올렸던 칠흑의 밀폐된 방을 생각해봅시다. 거기에 이번에는 열 개의 테니스공이 있다고 칩시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데까지 돌려 최초의 시간에 도달했을 때 거기에는 테니스공 열 개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1년 내내 기다렸다고 합시다. 그렇게 되면 방 안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여전히 열 개의 테니스공뿐이겠지요. 왜냐하면 거기에는 다른 어떤 힘이나 기운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평범한 열 개의 테니스공이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스스로 증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어떤 물질도 이에 관해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 처음에 방 안에는 여섯 개의 테니스공이 존재했다면 어떨까요? 이게 어떤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나요? 아뇨. 결코 아니지요. 좋습니다. 그러면 테니스공이 100만개 있었다면요? 여전히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방 안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테니스공뿐입니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 지는 상관없이.

우리가 깨닫게 되는 사실은 얼마나 많은 양이 있었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초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 때 존재했던 어떤 것의 양 자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 테니스공은 치워버립시다. 이제 방 안에 닭 한 마리가 있다고 합시다. 그리고 1년을 기다립니다. 그러면 1년 후에 방 안에 뭐가 존재할까요? 그저 닭 한 마리겠지요. 하지만 처음에 수탉과 암탉이 각각 한 마리씩 있었다면 어떨까요? 1년 후에는 수십 마리의 닭이 존재하게 되겠지요!

따라서 스스로 제3의 뭔가를 생산할 수 있는 두 존재가 방 안에 존재한다면, 그 때는 양의 문제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수탉과 암탉이 있으면 병아리가 태어납니다. 하지만 이렇게 제3의 존재를 스스로 생산할 수 없는 두 물질이 있었다면 양의 문제는 결정적인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테니스공과 축구공의 합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양의 문제는 질의 문제에 비하면 핵심 문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즉 최초에 존재했던 존재는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었는가? 그것은 또 다른 제3의 존재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등이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이제 아까 언급했던 닭으로 돌아가서 좀 더 정확히 상황을 정리해 봅시다. 왜냐하면 태초에는 실제로 그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방 안에 수탉과 암탉이 한 마리씩 있습니다. 두 닭은 각각 방의 다른 부분에 떨어져 있습니다. 그 두 마리는 또 다른 닭을 생산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왜 그렇죠? 왜냐하면 방 안에는 그런 일이 작동할만한 환경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방 안에는 수탉과 암탉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숨쉴 수 있는 공기도 없고, 땅도 없고, 그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그 어떤 물질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먹을 수도 걸을 수도, 날 수도, 숨쉴 수도 없습니다. 그들을 둘러싼 환경은 완전히 무의 상태인 것입니다.

따라서 닭 한 마리만으로는 고려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닭은 일련의 환경이 없이는 생산을 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적절한 환경이 주어졌을 때 닭은 병아리를 낳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적절한 환경이 주어지게 되면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종류의 닭을 생산하기도 합니다. 이는 수달이나 기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환경과 상관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존재하는 데 있어서 공기나 음식, 물과 같은 것이 필요치 않은 어떤 존재 말입니다. 이러한 요건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이 최초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외시킵니다.

자, 그렇다면 생물이 아니라 무생물은 어떨까요? 무생물은 존재하기에 필요한 특정한 환경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앞서 테니스공에서 봤던 것과 동일한 곤란한 상황을 맞게 됩니다. 무생물의 경우에는 스스로 증식을 할 수 없습니다. 열 개의 테니스공 대신에 1조 개의 수소분자가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아무리 시간이 지난다 해도 여전히 1조 개의 수소분자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무생물에 대해 생각해볼 때 그것이 존재하는 데 있어서 무엇이 필요한지 한 번 생각해봅시다. 초대형 입자 가속기 (Supercollider)에 대해 들어본 일이 있습니까? 몇 년 전 미국 정부는 물질 생성에 관한 실험을 하나 시작했습니다. 초대형 입자 가속기는 지하에 수십 킬로미터의 터널을 설치한 후 그 터널을 통해 원자 입자를 초음속으로 보내 서로 충돌을 일으켜 미세한 입자를 만들어내도록 고안된 장치입니다. 이는 가장 작은 크기의 물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우리가 앞에서 예를 든 열 개의 테니스공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존재하도록 하는 데만도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태초에는 그 어떤 에너지마저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방 안에는 완전 무의 상태였으니까요.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태초부터 존재했던 그 어떤 존재는 그 어떤 것도 의존하지 않고도 존재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즉 그 존재는 완전히 독립적이고 스스로 존재 가능한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태초부터 홀로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태초부터 존재했던 그 존재는 스스로 또 다른 존재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러한 능력을 갖지 못했다면 오늘날까지 있을 수 있는 존재는 태초부터 존재했던 처음의 그 존재 밖에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뭔가 다른 존재들이 오늘날에도 분명 존재합니다. 당신도 그 훌륭한 예 중 하나입니다.

세 번째, 완전 무의 상태에서 무언가 새로운 존재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아주 엄청난 양의 힘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태초의 존재는 그 자체로 엄청난 힘을 소유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주 미세하게 작은 입자를 만들기 위해 수십 킬로미터의 터널과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면, 온 우주에 있는 온갖 물질을 생산하는 데에는 얼마나 큰 힘이 필요할까요?

이제 처음의 그 방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이번에는 그 방 안에 매우 특별한 테니스공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공은 또 다른 공을 스스로 생산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공은 그럴만한 힘과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공은 완전히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즉 존재하기 위해 그 어떤 환경도 필요로 하지 않는 그런 존재입니다. 이 테니스공이야말로 영원히 존재하는 어떤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테니스공이 또 다른 테니스공 하나를 생산합니다. 자, 이 둘 중 어느 것이 시간의 관점에서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1번 공입니다. 그 공은 영원히 존재하는 공입니다. 그래서 항상 존재해왔습니다. 하지만 2번 공은 1번 공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시간의 측면에서 보면 하나는 유한한 존재고 다른 하나는 무한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힘의 측면에서 둘 중 어느 것이 더 우월할까요? 역시 1번 공입니다. 1번 공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2번 공을 생산해낼 수 있으며 이는 거꾸로 2번 공을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1번 공은 2번 공보다 훨씬 큰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2번 공은 그 존재를 위해 1번 공을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1번 공이 2번 공에게 1번 공을 파괴할 정도의 힘을 나눠줬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2번 공이 1번 공보다 더 큰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1번 공을 없애버릴 수 있는 힘이 이제 2번 공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설사 1번 공이 2번 공에게 자신의 능력 중 일부를 나눠줬더라도 그 능력 자체는 실은 1번 공의 능력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게 됩니다: 1번 공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데 스스로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가?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를 파괴하는 데 사용하려면 먼저 스스로가 존재해야 합니다.

이 1번 공은 모든 능력의 근원으로서 그 어떤 능력도 자신을 통하지 않고서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신이 존재할 수 없도록 유지하는 힘 자체도 자신에게 있으므로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한 이러한 힘을 발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1번 공은 그 어떤 제 삼의 존재에 의해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1번 공이 존재한 것은 다른 존재에 의해 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존재하는 존재입니다. 그 자체가 존재이며 무한한 생명인 것입니다. 1번 공의 존재가 소멸되기 위해서는 뭔가 그 1번 공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존재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존재도 1번 공보다 큰 힘을 가진 존재는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1번 공은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 다른 어떤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제3의 누군가에 의해 영향을 받아 변질되지도 않습니다. 또한 그것은 시작도 없으므로 종말도 없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존재하던 그대로 변함없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결코 소멸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존재 자체가 그것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것은 세상 어떤 것도 이길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태초부터 존재했던 그 존재는 그가 생산해 낸 다른 모든 존재보다 큰 존재다. 그 존재는 스스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 외 다른 모든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태초부터 존재했던 그 존재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태초부터 존재했던 그 존재 이외의 모든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항상 어떠한 필요를 갖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 모든 것은 태초에 존재했던 존재에 종속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태초부터 존재했던 그 존재는 무엇이 되었든 자신 외에 또 다른 존재를 생산하고, 어느 정도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 존재 외의 모든 것은 생산력과 그 모습에서 그 존재와 동일할 수 없다. 영원히 존재하는 존재는 시간과 능력 면에서 항상 그 어떤 것보다 위대하다. 따라서 그러한 영원한 존재는 그와 동등한 존재를 또 다시 생산해 낼 수 없다. 그 존재야말로 영원히 다른 어떤 존재의 필요 없이 스스로 존재할 수 있다.

영원한 존재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 원한다면 영원한 존재 1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질문있습니다…
 예수님을 제 삶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이것에 대해 더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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