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하나님에 대한 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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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도전

_헤더 윌리암스(Heather Williams) 지음

나는 스탠포드 학생이다. 모두가 스탠포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스탠포드, 서부의 하버드, 북부의 디즈니 - 6월마다 세상의 리더들을 생산하는 곳. 우리는 세상을 더 좋게 만들고, 있는 힘을 다해 완벽하게 만들자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 “당신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힘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좌우명이고, 우리가 하루하루를 사는 마음가짐이다. 우리 대학을 지배하는 세계관은 윤리와 개인의 약점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원을 필요로 하는건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스탠포드에 들어왔을 때 이 세상의 혁명은 나를 통해 일어날거라 기대했다. 나는 정치적인 세미나도 다녔고, 인종차별과 사회정의에 대한 수업도 들었으며 사회봉사에 몰입하게 되었다. 나 자신에게 세상을 확 변화시킬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혜택을 받지 못하는 초등학생들을 과외했고, 집없는 사람들과 일일캠프도 열어봤으며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남은 음식을 모아도 봤다. 그런데 내가 세상을 바꾸려 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 좌절했다. 나는 관료정치, 무관심 그리고 죄와 대립하게 되었다. 나는 인간성에 근본적인 개조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때쯤 나는 친구에 의해 성경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성경책을 증오하며 대학에 들어왔었다. 난 성경책을 성차별적이고 동성애를 혐오하며 자기 혼자 옳다고 하는 – 매우 편협적인 인쇄물이라고 생각했다. 되돌아보면 나는 꽤 성경책을 접하기 쉬운 환경에서 자랐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주로 내가 만났던 크리스천들은 성경에 담긴 내용을 설명하기보다는 성경책에 대한 아무 개념이나 던지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 대부분은 나의 자유로운 의식 덕분에 내가 곧장 지옥에 갈거라고 확신하며 소리 높여 말했다. 그러다 내 대학 친구가 나의 성경 지식(일요 어린이 수업시간과 신입생 문예시간에 “역사의 위대한 업적”을 학습하며 쌓은 지식)에 대해 물어볼 때, 나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 대해서 아주 조금밖에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읽었다. 어느 날 밤, 나는 ‘누가’라는 제자가 예수에 대해 좋은 소식을 적은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는 어느 마을에 살았던 죄가 많은 여인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녀는 저명한 남자의 집에 있던 예수의 발 앞에서 울고자 찾아왔다. 읽다보니, 이 여인은 예수에게서 용서를 원한다는 게 분명히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의 삶의 연약함과 지친 마음을 예수가 해결해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나는 내가 그동안 읽었던 모든 책에서 이 여인보다 더 동질감을 느꼈던 적이 없었다. 나도 지치고 연약하다. 좋은 동기에서 하는 일에 지치고, 자신감을 지키느라 지치며 내 개인적 삶의 수치와 가식에 지쳤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만약 당신이 진짜 있다면, 만약 당신이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면, 나의 인생에 당신이 필요합니다.” 거의 2000년 전 그 여인에게 했던 예수의 말이 그대로 내 가슴 속에 메아리 쳤다: “너의 죄가 용서 받았다.”

그날 밤 나의 모든 좌절은 잔잔하고 예측 할 수 없는 한계점에 이르렀고, 그것이 깨지면서 나는 그토록 원했던 정의와 관용의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발견했다. 오래된 기독교 찬양가가 사실임이 증명되었다: “우리는 약하지만, 그는 강하다.” 내 죄와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나를 겸손의 자리로 인도했다. 효과적이고 강력한 변화는 완전한 사랑의 원천을 만날 때 시작된다. 바로 예수, 그가 사랑 그 자체였다.

그 밤 이후 나는 더욱 더 성경책을 읽었고, 다른 크리스천들을 찾아서 내가 만난 예수를 지식적으로 설명했다. 이런 나를 보며 주변 친구들과 남자친구는 내가 종교적 광신자가 된 것으로 보고 걱정을 했다. 나도 그랬다. 결국 내 가장 친한 친구들과의 사이가 멀어졌다. 지적인 불가지론자에서 헌신적인 크리스천으로의 변화가 그들에겐 너무나 이상했을 것이다. 그들은 내가 나의 죄를 인정함으로써 얻은 자유에 대해 관련지어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들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그들은 내가 자신들의 약함과 결점을 보면서 판단한다고 생각했다. 한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처럼 똑똑한 애가 죄와 용서라는 헛소리를 하다니 도대체 나는 이해할 수 없다.” 현재 나는 이런 인식 없이 세상에서 활동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우리가 합리적인 도덕을 준수하거나 설정하는 데 유능한 존재라고 믿지 않는다. 서로의 이해관계 속에서 자신의 자존심과 이기심으로 인해 상처를 주고 받고, 죄를 짓는 연약함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나의 인생과 이 세상을 이전의 관점 - 우리에게는 더 나은 교육 또는 나은 정부 혹은 나은 의사소통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 에서 벗어나 접근해간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죄로부터의 해방이지 개선이 아니다. 죄의 기본적인 개념은 우리에겐 심각한 결함이 있고, 그것을 고치기 위한 신적 존재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고칠 수 없다.

나는 대학을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대학 생활을 마쳤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사회 정의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일에 열정적이다. 스탠포드는 내게 여성으로서 그리고 운동가로서 성장하는 데 놀랄만한 기회를 제공했었다. 결정적인 차이는 예수를 매일 의지함으로 오는 그 능력에 대해, 그리고 그 능력이 나의 기본적인 성향을 점검하고 회복시킨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세상에 혁명을 이루고 싶다, 이제는 오직, 한 번에 한 영혼씩.

 질문있습니다…
 예수님을 제 삶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이것에 대해 더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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